비스듬히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ㅡ정현종 시와 수필 2018.12.04
표리부동 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 봐. 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나 나쁘다. 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시아침 12/03 평소엔 그렇게나 네가 잘 지내길 바라는데 꿈에선 반대다. 너의 평안을 바라지 .. 시와 수필 2018.12.03
그들은 함께 호두를 먹었다 호두 까는 기구나 망치가 있어야 한다고 여자는 호두를 보고만 있었다 남자는 와그작와그작 두 손으로 호두껍질을 부수어놓았다 껍질이 약해서라며 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단단했었다고 언제나 단단한 것은 아니라는 듯이 그들은 함께 호두를 먹었다 my 수필 2018.11.21
"추석이란 무엇인가"되물어라 밥을 먹다가 주변 사람을 긴장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음식을 한가득 입에 물고서 소리 내어 말해보라. “나는 누구인가.” 아마 함께 밥 먹던 사람들이 수저질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다.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대개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되기 때문.. 좋은 기사 2018.11.16
깨꽃냄새 내 몸에서 깻묵 썩은 냄새가 나지야 깨꽃 같은 등창이 몸에 번져 병석에 오래 계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깨꽃냄새 같지만 썩은 냄새는 아니예요 썩는다는 말이 불경스러워 말했지만 아버지는 눈감고 고개를 저으셨다 썩은 깻묵에서 깨꽃냄새가 날 리 없지야 썩은 깻묵에서 깨꽃.. 시와 수필 2018.10.14
이런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푸르디 푸른 하늘에 한 점 구름 같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운치 있다 하겠지만 외로운 하늘의 마음을 달래주는 한점 구름 같은 사람하나 만나고 싶다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開眼)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 시와 수필 2018.09.18
침묵의 세계 어떤 의미에서 침묵은 - 특히 명상의 침묵은 -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만든다. 피카르트의 모든 명상적인 활동은 일종의 '존재의 전체성'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체성은 오늘날 기술의 진보뿐만 아니라 기술을 맹목적인 도구로만 삼는 사람들의 힘의 의지에 의해서도 위협받고 .. 책향기 2018.09.10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 시와 수필 2018.08.12
익어가는 것들 감꽃 떨어진 길을 걸은지가 엇그제 같은데 꽃떠난 자리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푸르디 푸르다 보내고 난 다음에 뒤늦게 온 마음같이 불가하게 존재하는 것들이여 술잔을 들자 기약없는 날들이 기약보다 아름다운 날들일지니 지금 뜨겁게 푸른것으로 족하자 사람향기 2018.08.08
군위 가는 길 새벽 길을 달렸다 길을 따르다 보니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해를 품은 산이 우측에 있다가 정면에 있다가 때로는 좌창에 걸리기도 한다 물러나는 것 같다가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한데 등지고 휘돌아 거꾸로도 간다 그럴뿐, 그곳으로 가는 중이다 네곁에 머무는 일도 잠시도 한결 .. 사람향기 2018.07.14